(6월 11일) 잘못된 선택 - 창 27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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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수) | 창 27장 1~10절 | 잘못된 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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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든지 판단하여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단에는 책임과 그에 따른 값이 뒤따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 펼쳐나가는 사건이 있습니다. 사건에 따라 선택의 조건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어갈 장자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임신하였을 때 이삭과 리브가로 하여금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합니다. 여기에 이삭과 리브가의 자세는 선택이 아니라 순종이 필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이 아니라 선택했던 이삭, 리브가, 에서와 야곱은 잘못된 선택으로 그 값을 치룹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한 가운데 각각의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4명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여정 가운데 그 값을 치룹니다. 우리 또한 선택과 순종이라는 양단의 길에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실수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에서와 야곱의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순종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1~4)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육신의 길을 따르는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며 모두를 불행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 몸에서 태어날 쌍둥이 가운데 먼저 태어날 에서가 ‘언약의 장자’가 아니라 뒤에 태어날 야곱이 기업 무를 ‘언약의 장자’가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77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에서와 야곱의 나이가 77세였으며, 이삭의 나이가 137세가 됩니다. 이때 이삭은 자신의 생명의 년 수가 다 되었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그러나 이삭은 이 사건 이후 무려 43년을 더 살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장자’에 대해 계시해 준 것을 잊어버리고 집안을 이끌어갈 능력을 가진 에서를 마음에 둡니다. 이삭의 마음에 편애가 생깁니다.
이삭은 에서를 기업 무를 자인 ‘언약의 장자’로 세우기 위해 자신에게 별미를 제공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축복하여 ‘언약의 장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육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과거의 이삭, 순종하는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계시해 준 것이 있다면 그 계시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쫓아가는 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선택인지, 순종인지 영적으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선택에는 값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육신의 길을 따르는 걸음에는 생육, 번성, 충만이 없습니다. 신앙의 옆걸음을 치는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마 15:14)의 말씀처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행의 길로 인도할 뿐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7) 신앙의 바른 소통을 이루지 못한 인본적인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잘못된 선택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의 바른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에서와 야곱의 사건은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소통이 불통이 된 것의 출발은 이삭과 리브가로부터 시작됩니다. (창 25:23)에 의하면 이삭과 리브가는 언약을 이어갈 장자인 ‘기업 무를 자’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라는 것을 여호와로부터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77년이라는 세월에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앞서게 됩니다. 인본주의에 따른 선택과 결정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도록 만듭니다. 이삭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리브가가 듣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던 리브가 역시 인본적인 판단 가운데 인본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신앙의 소통이 부재했던 리브가의 선택 또한 야곱을 남편과 에서 몰래 부릅니다.
이삭도 리브가도 축복권은 하나님께 있다라는 것과 그 축복은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종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신앙으로 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부모들의 신앙관이 비뚤어지니 자녀들도 그 안에서 잘못된 길을 함께 걷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날마다 알아가기를 멈추는 순간 그 속에는 인본주의가 자라나게 됩니다. 신앙의 바른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인본적인 선택 안에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없습니다. 마귀의 뜻을 쫓아갈 뿐입니다. 신앙의 바른 소통을 이루지 못하니 편애가 생기고, 서로를 속이는 방법론이 만들어집니다. 그것도 가족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잘못된 선택이 되지 않도록 신앙의 바른 소통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8~10)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한 신앙의 걸음은 다른 사람까지 환난의 늪에 빠지도록 만들며 동시에 영적 마비 상태를 만들어가는 잘못된 선택의 길에 들어서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리브가의 모습은 외형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닙니다”라는 것이 답이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심’의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대상 16:34)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영원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속성은 영원성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도 그 방법이 악하거나 거짓이 더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만 인식했지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전 10:31)은 증거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가르치는 것도 바르게 가르쳐야 그것이 신앙이 됩니다. 리브가의 잘못된 가르침과 지시는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한 가운데서 나온 파생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사건으로 20년 동안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생이별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이 사건으로 야곱과 이 땅에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는 신앙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까지 환난의 늪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잘못된 길을 가게 만듭니다. 동시에 영적 마비 상태를 만들어가는 불행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적용)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영적으로 쇠퇴함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길을 따르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그 걸음 또한 인본주의로 그 걸음이 리브가처럼 나타나게 됩니다. 신앙의 바른 소통을 이루지 못한 인본적인 선택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이삭의 가족이 비극의 20년을 맞이한 출발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신앙으로 자신들을 세우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신앙의 근본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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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이삭과 리브가,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께 향햔 순종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으로 그 값을 치룹니다
하나님께 순종은 필연이지만
때로는 나의 모습도 내 판단으로 선택하는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간다고 고백하면서도
환경에 흔들리기도 하고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면
인본주의적인 감정이 먼저 표출되기도 할때
빨리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향하고 마음은 전심을 다하지 못하는 리브가의 모습이 되지말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민감한 교통을 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신앙의 근본을 세워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내가 아무리 지혜롭게 선택하려 애쓰고 몸부림쳤으나 결국은
알지 못한채 마귀의 뜻을 따라가며 인본주의에 기대어 결정했던걸
깨닫습니다
그 선택의 값은 쓰라렸고 지금도 그 흔적을 안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기도와 말씀위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감사와 평안을 배웁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에 나를 온전히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