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 행 3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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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금) | 행 3장 1~10절 |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3: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도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의 목적으로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들을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는 ‘청지기’로서의 역할에 따른 창조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 가운데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찬양과 경배받으시는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배할 ‘예배자’로서 사람을 창조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예배자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는 강력한 영적인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진실된 예배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 가운데는 아주 좋은 전통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정한 시간마다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에 따라 제3시, 제6시 그리고 제9시, 하루에 3번 성전에 올라가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에도 ‘형식적인 기도’가 있는가 하면 많은 이적과 승리를 안겨다 주는 ‘능력의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진실된 예배자로 세움을 받았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아주 핵심적인 제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된 예배자인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진실된 예배자인 ‘산 예배자’의 기도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해 어떤 ‘산 예배자’로 그 모습이 세워져야 할까요?
(1~2) 잃어버린 소망을 되찾기 위해 세속적인 방법을 구하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망을 되찾아주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9시, 지금 우리의 시간으로 계산할 때 오후 3시, 예배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의 전통에 따라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오릅니다. 이때, 두 사람은 자신들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성전 미문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40여 년’의 세월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아왔으며, 생활 또한 다른 사람에게 구걸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삶이 완전히 무너진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의해 앉은뱅이와 같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그들을 성전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면서부터 못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성전의 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앉은뱅이’는 말 그대로 세상에 대해 소망을 잃은 자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는 두 가지의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인 삶의 문제를 구걸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자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소망을 세속적인 방법에서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이 구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구걸이 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신 15: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그리고 (마 7:7)은 말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고, 세속적인 방법을 찾으면 그 길 속에 자신이 묻혀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자신의 활로를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열어주십니다. 앉은뱅이의 두 번째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그가 구걸한 장소가 ‘성전’ 앞이었다는 것은 그가 영적으로 매우 빈약한 상태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 거지를 통해 역사할 일이 없습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영적인 상황이 먼저 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 당사자가 영적으로 들을 귀를 닫아버린다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와 같은 모습을 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수많은 방법을 구합니다. 세속적인 방법을 구하다가 안 되니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결국은 목숨을 던져버리기도 합니다. 생명력이 없는 외식하는 신앙으로는 길이 없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그 영혼들을 영적으로 회복을 시켜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영적으로 일깨우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망을 되찾도록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산 예배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5) 고통과 환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우리를 보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에 도착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앉은뱅이는 베드로의 일행을 향해 도와주기를 간청합니다. 앉은뱅이는 육적으로만 불구자가 아니라 영적으로도 이미 불구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목숨이 붙어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소망과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자였습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산 예배자’였던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의 눈에는 그 앉은뱅이가 ‘한 인격’이요, 불쌍한 영혼으로 보이게 됩니다. 절망적인 삶 가운데 놓인 앉은뱅이를 향해 삶의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우리를 보라!” 앉은뱅이의 눈이 베드로와 요한의 두 눈과 마주칩니다. 이때 앉은뱅이의 두 눈은 자신의 애처로움을 보고 돈을 던져줄 것을 기대하는 눈이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에게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해 “우리를 보라!”라고 말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우리를 보라!”라고 말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보라’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너는 나를 보라!”라고 자신의 신앙과 삶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합니다. 그리고 불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환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신앙으로’, ‘삶으로’, 자신 있게 “나를 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불의와 부정 그리고 부패로부터 자신을 구별해 내면서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나를 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6~10) 앉은뱅이와 같이 소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를 행하는 살아 있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우리를 보라!”라고 말을 한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잔뜩 기대를 합니다. 이때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그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이 소리를 들은 앉은뱅이가 낙심합니다. 이런 그를 향해 베드로가 희망의 밧줄을 다시 던집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너에게 주겠다!” 앉은뱅이의 눈이 번쩍 뜨입니다. 베드로는 과연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지인 앉은뱅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고 말했을까요? 그것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천하를 호령하듯 강권적으로 앉은뱅이를 향해 명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6절) 베드로는 자신이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앉은뱅이에게 명하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평생 앉은뱅이로만 지냈던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몇 푼의 돈으로 생업을 며칠 연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앉은뱅이로 하여금 노동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삶의 회복인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베드로처럼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자가 되십시오! 영혼들을 향해 외치십시오! “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앉은뱅이와 같이 소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를 행하는 살아 있는 ‘산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소망의 파수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적용)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세상의 그 어떤 값진 보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열매가 역사 가운데서 맺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우리를 향해 베드로처럼, 요한처럼 사용하기 위해 쓰러져가는 영혼들을 가슴에 안을 수 있도록 영적 눈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소망을 되찾기 위해 세속적인 방법을 구합니다. 이런 영혼들을 영적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나를 보라!”라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일으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그릇을 먼저 키우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소망이 열매로 맺어지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 다음글(10월 7일)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 = 행 2장 43~47절 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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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찬양과 경배 받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예배할 '예배자'로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산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한 날을 나아갑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 자신의 신앙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먼저 앞서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안에 나를 녹여 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중에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본다고 해도 섣불리 발설해서는 안되고
누구를 평가하면 안되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서
마치 주님의 음성이라고 하면서 권면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되며
마치 내가 기도중에 듣고 본 것이 다 옳은 것처럼
행하여서는 안되며 사람앞에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예배자의 모습이 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신앙의 성숙함 속에서
먼저 나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며 겸손한 자세의
예배자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을 하다보면 교회안에서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또한 쓰러져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가슴에 않을 수 있는 영안이 열려져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며
오늘도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성도가 되어
하나님 앞에 진실된 산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려움에 놓이면 먼저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 행하고, 그게 안 되면 불평불만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내가 말씀을 듣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는 방법을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앉은뱅이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내가 먼저 영적으로, 말씀으로 바르게 세워지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함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과거의 나와 같은 영의 눈과 귀를 닫아버린 영혼들이 일어나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신앙의 본이 되는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능력을 자랑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앙이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렇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신앙과 삶을 하나님의 마씀으로 먼저 일으켜 세워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을 전하는 산 예배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크게 두가지 있습니다.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기도하는 목적으로 만듣셨고 또 하나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만듣셨습니다.
고통과 환난의 시대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우리를 보라"라고 자신있게 말을 할수 있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켜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