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예수를 담아내는 성도 = 미 5장 2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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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수) | 미 5장 2~6절 | 예수를 담아내는 성도 |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5: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5: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도입)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선지자들을 통해 들려줍니다. 미가는 메시아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을 예언합니다. 메시아는 화려한 왕의 대관식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그 값을 치루기 위헤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나실 그 장소 또한 화려한 곳이 아니라 작은 성, 베들레헴이었으며, 천한 장소인 마구간이었던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오직 한가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이 되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속의 제물로 드려짐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목적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셨던 겁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완전한 대속을 이루신 예수님의 걸음은 그저 십자가에서 죽으신 생명의 속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완전한 대속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불순종이 낳았던 ‘가시와 엉겅퀴’에 대한 그 값을 순종과 복종으로 그리고 아담이 어겼던 그 율법을 난지 ‘팔일’만에 행하는 할례의 준수를 통해 순종으로 그 값을 치루어 나갔던 겁니다. ‘삼십’이 되어 공생애를 시작했다는 것은 ‘삼십’이 되어 비로소 대속을 이루기 위한 걸음을 걸었다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아담의 완전한 대속을 이루기 위해 그 값을 이미 치러 갔다는 것이며, ‘삼십’에 시작한 공생애의 사역은 공식적으로 ‘삼중직분’이라는 사역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만들어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속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성도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스스로 담아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구원한 방주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며, 예수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백성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어떻게 담아내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2) 사망의 그늘 아래에 놓여 있는 영혼들의 슬픔을 생명의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뒤로 하고 스스로 비천에 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세상 가운데 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인지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오시는 장소와 그 모습이 대속을 담아내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던 겁니다. 그 장소는 다름이 아니라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역사적으로 (창 35:19)에 의하면, 야곱이 그의 아내 라헬을 묻은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었던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그의 아내 라헬이 자신의 열두 번째 아들인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산고의 고통으로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온상이었던 드라빔을 숭배한 라헬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를 거부하고 그를 묻어버렸던 장소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룻 4:17),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의 조상인 보아스가 이방 여인인 룻을 만나고, 결혼하여 함께 살았던 장소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는 측면에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경은 이 베들레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2절)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브라다’는 ‘열매를 맺음’이라는 풍요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문제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라는 말씀을 통해, 풍요로움과 미천한 것이 대조를 이루게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첫 번째는 장소적인 측면에서의 비교입니다. 비록 베들레헴이 이 땅에서 풍요를 이루고, 중요한 장소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영광에 비교하면 천박하고 부족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는 것이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고 천한 모습을 취하게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시는 목적을 담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과 ‘에브라다’가 모두 풍요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를 회복시켜 (창 3:18) 평생에 고통을 낳게 했던 가시와 엉겅퀴의 문제를 해결하여 진정한 풍요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비록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베들레헴 에브라다’라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되고, 포장된 풍요와 행복에 불과합니다. 세상은 죄로 인하여 사망의 그늘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진정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담아내어야 합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비천에 이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4) 자기 양의 고난을 대신하며, 자기의 양 떼를 항상 서서 보살폈던 예수님처럼 자신의 고난과 수고에 대해 그 값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장소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비춰주셨다면 두 번째는 어떤 자세로 메시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역들을 이루어갈 것인지 그 모습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메시아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대회개가 뒤따를 것을 말씀합니다.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라는 말은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이라는 말씀은 메시아가 오신 때를 말하고 있으며, ‘남은 자가 이스라엘 가운데 돌아온다’라는 것은 소망이 없는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을 메시아가 대회개를 통해 구원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3절)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메시아가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인지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것이 (4절)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목축하니’라는 사역의 모습입니다. 그분은 위엄 가운데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오셔서 사역을 행하실 때 ‘서서’ 그 사역들을 행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서’라는 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수행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목축이 직업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 일들을 행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서서’는 잘 돌보는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가해질 때, 양들을 버리는 목자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 대해 끝까지 함께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목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은 예수님처럼 길 잃은 하나님의 양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보살피라고 이 땅에 우리를 두신 겁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예수를 담아내는 성도로서 그 값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고난을 대신하기를 기뻐하고, 그 수고하기를 힘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의 값에 대해 모든 것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던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6) 분쟁과 시기와 질투가 판을 치는 악한 세상을 샬롬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무력이 아니라 예수를 담아내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앗수르는 미가 선지자가 살아가던 그 시대 근동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던 강력한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앗수르가 가는 곳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과 살인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평강이 깨져버립니다. 마귀가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평강을 줄 것을 미가를 통해 약속합니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5절) ‘일곱’이 완전수를 말한다면, ‘여덟’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며, 이 또한 일곱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은 그 수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 ‘완전한 군대’, ‘강력한 군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군대를 일으켜 악한 세력인 앗수르로부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낼 것이며, 이것을 반드시 성취할 것을 말씀합니다.
(엡 6:11)은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그 길을 가르쳐줍니다. 마귀가 세상의 세력화를 통해 싸울 때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령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화려한 무기와 능력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악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는 (겔 37:1)의 말씀처럼 생명이 없는 죽은 뼈와 같은 군대가 됩니다. 죽은 세상과 같은 방법, 같은 모습으로 싸워서는 마귀를 어떤 방법으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분쟁과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음란과 불의가 판을 치는 악한 세상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정복하기 위해, 십자가를 사용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를 담아내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적용)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립니다. 그 예물 중 하나는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이었고, 또 다른 하는 제사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이었으며, ‘몰약’은 장사를 예비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쏟으며,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한 길, 죽음의 길을 뜻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예수를 담아냅시다! 나에게 새 생명으로 응답하여 주신, 예수님을 세상을 향해, 자신을 삶의 모든 터 위에 담아내는 십자가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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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시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죄인인 우리의 완전한 대속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무한한 그 사랑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나는 예수님을 향한 나의 마음과 나의 행실은 어떠한지를 깊이 묵상하고
구원의 백성으로서 예수의 모습을 어떻게 담아내어야 할지 나에게 질문하며
오늘을 허락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나에게 주어진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수요 전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전도현장에 나아가
말씀을 전하며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모으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과 같은 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지만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니
그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하여 전진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예수님을 담아내기보다는 세상의 모습과 가치관을 더 담아내고 드러냈던 거 같습니다.
불의 앞에 나는 대하려 했는지, 정말 기쁨으로 주의 일을 했는지,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신앙이 담겨 있었는지 돌아보며 주님 앞에 회개함으로 나아갑니다.
불의와 악한 세상에 세상의 방법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자,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악한 세상을 이겨내며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담아내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의 성취를위해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선지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에게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어느 곳에,어떤 모습으로 것인지 알렸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켜나가며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 자신을 위해 만듣 것과 세상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신의 삶의 모든 터 위에 담아내는 십자가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