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절대적 우위 = 고전 13장 1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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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화) | 고전 13장 1~13절 | 절대적 우위 |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도입)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 지역의 특수성답게 다양한 은사 문제로 홍역을 치룹니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신령한 말과 예언과 믿음과 선행이 곁들여진다 할지라도 사랑이 수반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이 헛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의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신앙생활의 원동력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성품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사랑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류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은 모든 것의 절대적 우위가 됨을 말합니다. 이런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과 은사에 있어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은사에 있어서 어떤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1~3) 사랑은 신앙과 은사와 섬김의 절대적 기준이요 모든 것의 변함없는 원리요 핵심입니다
모든 은사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어떤 은사도 그 가치가 더하거나 덜한 것이 없이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동등합니다. 다만 은사가 각양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일하시는 모습을 나타낸 것일 뿐입니다. 이런 은사는 어떤 훈련과 수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다양하게 일하시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은사를 ‘지혜의 말씀’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로,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로,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의 은사’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하나님의 사랑이 결여되어있는 방언은 생명력 없는 구리와 꽹과리 소리와 같습니다. 교회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계시의 말씀을 풀어서 해석하는 은사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결여되어있는 것은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결여되어있는 구제와 섬김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다툼과 분쟁의 원인은 지식과 은사와 능력이 부족하여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과 은사와 섬김은 ‘차가운 도구’와도 같아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은 어떤 일을 해도 서로 불편과 불만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4~7) 사랑은 상대를 이길 수 없어서 참아야 하는 소극적인 것에서부터 모진 고통의 순간을 주님의 마음으로 걸어가게 하는 기준입니다
‘사랑’은 헬라어로 친구간의 우정과 같은 ‘끈끈한 사랑’을 나타내는 ‘필레오’와 이성간의 ‘육체적 사랑’을 말하는 ‘에로스’ 그리고 ‘가족 상호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스테르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나타내는 ‘아가파오’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사랑에 대해 그 뜻을 ‘아가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15가지’로 표현합니다. 이때 ‘사랑’의 시작을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끝을 ‘견디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을 말할 때 왜!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하였을까요? ‘오래 참는 것’은 상대를 이길 수 없어서 참아야 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의 불법함과 비열함 앞에서도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를 향하여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셨습니다.
사랑의 첫 번째 단추를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직분과 은사를 자랑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자신은 비바람과 풍파를 맞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비바람과 풍파로부터 막아주는 ‘지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완전한 자기희생이요, 헌신입니다. 열다섯 번째, 사랑을 ‘견디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곤경이나 절망 그리고 좌절까지 극복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은 탁월함이 아닙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주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대가와 보상을 바라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주님의 마음으로 일을 감당하는 ‘아가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8~13) 사랑은 이 땅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 나라에서 영존하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종말이 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취가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한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각종 은사와 직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믿음과 소망조차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에 필요한 것이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되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임했던 것 가운데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영원히 존속하는 ‘영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사랑은 영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절)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그때까지 항상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종말이 임하는 그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했던 겁니다. ‘사랑’은 우리가 붙들고 간직해야 할 영원한 가치입니다. 최고의 보물입니다. 이 땅에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집착하지 맙시다.
(적용)
사랑은 모든 것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산출해 내는 근거가 되며,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과 소망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사랑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랑은 타인을 위한 덕목이기에 우월성을 가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으로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나왔으며,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존하는 기준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모든 것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구원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모든 것의 절대적 기준이며, 모든 것의 변함없는 원리요, 핵심입니다. (마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하여 커다란 ‘두 계명’을 주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으며, 아래로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을 통해서 말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모든 것의 절대적 우위입니다. 은사와 능력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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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을 말하는 성경으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누구를 막론하고 알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교회를 처음 나오는 성도들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라고
말하는 것 처럼 사랑은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디에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랑의 기준과 가치는 무한하게 크고도 크며
사랑의 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형체이지만
그 어떠한 형체보다 위대하고도 위대한 힘을 가진 것이 '사랑' 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우리의 신앙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새 소망이 없는 가치없는 사람이었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것처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는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