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요동치는 악한 권세 - 마 8장 28절 ~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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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목) | 마 8장 28~34절 | 요동치는 악한 권세 |
(도입)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켜 알도록 합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중풍 병자를 회복시키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초자연적인 역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을 찾아갑니다. 그곳에는 ‘귀신들린 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명세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추앙받을 만한 자리로 가지 않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 두려움의 장소, ‘귀신들린 자들’이 있는 장소, 무덤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을 친히 찾아갔던 장면과 그곳에서 펼쳤던 사역을 통해 요동치는 악한 권세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 앞에 우리는 어떤 사역을 펼쳐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8~29) 흑암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 그리고 험악한 곳이라 할지라도 말만 앞세우는 사역이 아니라 친히 찾아가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귀신’은 (마 25:41)에 의하면 ‘마귀의 사자들’이며, (계 18:2)에 의하면 ‘더러운 영’의 존재입니다. ‘귀신’은 (계 12:4), 타락한 천사장이었던 마귀(사탄)를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그 수가 전체 천사들의 ‘삼분의 일’에 해당할 정도로 많았다고 요한계시록은 증거합니다. 이런 ‘타락한 천사’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를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로서 사람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을 발하여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을 날뛰게 만들고,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의 소문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그곳에는 ‘귀신들린 자들’이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위협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회피하지 않고 친히 찾아갑니다. 요동치는 악한 권세가 세상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흑암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 그리고 험악한 곳이라 할지라도 말만 앞세우는 사역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친히 찾아가는 사역을 펼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0~32) 악한 세상을 공의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지식을 앞세운 사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세를 발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불못’에 던짐 당하는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 예수님께 타협안을 긴급히 제시합니다. 자신들을 사람의 몸에서 빼내어 ‘돼지 떼’로 들어가도록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돼지’는 (신 14:8)에 의하면 ‘부정한 짐승’으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귀신들’은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고 있는 ‘돼지 떼’ 안에 들어가는 것을 심판으로 삼도록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명합니다. “가라!” 이것은 ‘귀신의 영’이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귀신의 영’이 들어갔던 ‘돼지 떼’가 모두 ‘바다’에 빠져 몰살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력과 불의한 타협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을 ‘공의’로 심판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바다’는 ‘음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출 14:28), ‘바로의 군사들’을 물로 덮어 심판하였던 ‘홍해’ 사건과 같은 심판의 장면이었습니다. 악한 세상을 공의롭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식과 방법을 앞세우는 사역이 우선 순위가 되면 안 됩니다. (히 2:8)의 말씀처럼 만물을 그 발아래 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세를 발하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33~34)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불의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의 영혼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돼지 떼’에 들어갔다는 것과 ‘귀신들린 자들’이 들어간 ‘돼지 떼’가 몰살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반응입니다. 이들은 ‘귀신들린 자들’로 인해 늘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지키는 길목은 어느 누구도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귀신들린 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재산에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재산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떠나주길 원합니다.
세상의 평강은 힘의 세력과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타협과 협상도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공의롭지 못하면 그 타협과 협상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불의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의 영혼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해야 합니다. 이럴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이런 사역이 때로는 외롭고, 고달프고, 고난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이 사역을 감당해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악한 권세가 요동치면 요동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종말을 확정 짓는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끝 날이 다가온 줄 알고 마귀가 ‘악한 권세’를 총동원시켜 발악합니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것을 알아본 것처럼 마귀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영적인 부분을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마귀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권세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적인 전투를 치룰 때, 우리의 능력으로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요동치는 악한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세는 오직 하나입니다. (요 19:30), “다 이루신” 예수님의 권세로 이길 수 있습니다.
비록 험악한 곳이라도 예수님처럼 친히 찾아가는 사역을 펼쳐나가는 권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사역을 펼치면서 물질만능 속에 빠져 있는 세상의 영혼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역을 예수님처럼 펼쳐나가는 ‘예수님의 살아 있는 그림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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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마귀는 악한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귀에게 무너질 수 밖에 없으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세상도 악한 마귀의 권세에 의하여
악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유혹하고 넘어트리고 있습니다
믿는자도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에 마귀는 더 요동치고 있기에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나 자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물리쳐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악한 권세를 물리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히 무장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싸워 승리 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