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마 26장 17~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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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목) | 마 26장 17~25절 |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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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인간의 원죄를 해결하기 위한 언약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언약의 성취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값’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임할 마지막 날인 유월절이 예고 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의 날입니다. 고난주간에 있었던 예수님의 ‘유월절의 만찬’을 통해 들려주는 음성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까요?
(17~19) 어리석은 신앙적 우월주의 의식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 항상 순종하는 자세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의 만찬을 자신들의 전통과 달리 하루 앞당겨 준비하도록 명하면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 때가 가까이 왔느니라!” 그리고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성안에 아무에게 가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 안에서 만난 그 사람에게 “말하라!”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두 가지의 비밀한 사실이 들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권세 자일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소유의 권한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눅 22: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권세대로 그 주인은 그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내 때가 가까이 왔느니라!”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속의 값’으로 이 땅에 오신 ‘희생의 제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아올 때, 자신들의 우월함을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 자랑삼습니다. 그리고 서로 어떤 자리에 오를 것인지 언쟁을 벌리며 싸웁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성전에 예물로 ‘흠 없는 짐승’을 바쳐야 한다면서 제물에 대해 흠이 있고, 없고를 자신들이 판단하며, 신앙의 우월함을 내세워 사람들 가운데 군림합니다. 일반 사람들이었던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자신들은 이방인들과 구별된 자라는 것을 유월절의 의식을 통해 우월감으로 나타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마지막 유월절이 이 땅 위에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다른 것으로 준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으로 순결한 신부의 옷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며,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유월절을 잘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0~24) 자신에게 가식적인 신앙의 자세는 없는지 그리고 주님을 배반할 요소는 없는지 늘 살펴보며 신앙에 대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날이 저물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집니다. 이때 저녁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끄집어냅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때 모든 제자들에게 동일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의 대답을 거꾸로 돌려서 들으면 자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막 10:37)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권위와 권세를 잡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가식적인 신앙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드립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십자가를 부활의 십자가로 바꿉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제자들이 말한 것처럼, 나에게는 가식적이고, 주님을 배반할 요소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신앙을 살펴보며 신앙에 대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는 주님을 배반할 요소는 없는지 돌아보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유월절을 은혜롭게 잘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5)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신앙으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자신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산헤드린 공회에 팔아넘길 배반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가룟 유다는 들켜버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그럼! 너는 당연히 아니지!”라는 대답을 유도합니다. 이런 파렴치한 가룟 유다를 향해 주님께서는 그의 신앙의 양심에 비수를 꽂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그러나 자신들이 볼 때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분명히 마지막까지 그 길을 열어줬는데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자신의 전부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 엎드리지 않고, 자신을 끝까지 위장하며 속입니다. 이런 가룟 유다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영광을 누렸을까요? (눅 22:3)은 말합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그리고 (마 27:5)은 말합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절망 가운데 최후를 맞이할 가룟 유다와 같은 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속이지 말고, 진솔하고,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계 22:20)에 나타나는 모습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을 위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구원과 심판입니다. 여기에 대해 (계 5:4)과 (5절)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종말이 임하기 위해서는 종말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두루마리’가 펼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두루마리의 인은 뗄 자격을 가진 자가 이 땅위의 사람들 가운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깨닫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천상에서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이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께서 두루마리의 인을 뗍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에게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대로 영원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자신을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신앙으로 단단히 묶어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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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의 일을 순종함으로 묵묵히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혹시나 나의 잘못 된 모습으로 인하여
세상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이 변색되지 않게
나의 모든 말과 행함이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전해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이 지역에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날이 되기를 원하며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변치않는 그 사랑, 그 믿음으로
주의 나라 위해서 쓰임받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coco 작성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순결한 신부의 옷을 입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제 삶 속에서 불의를 깨닫고 회개하며
항상 정결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