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신앙의 바른 자세 - 겔 23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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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단연코 B.C 930년(남과 북으로 갈라짐)과 722년(북이스라엘 멸망) 그리고 586년(유다 멸망)의 역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 이스라엘은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으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뼈아픈 사건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이런 뼈아픈 역사를 가져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분열과 멸망은 우상숭배와 불의에 따른 하나님의 공의의 값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의 역사를 써내려 가게 되었던 핵심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을 사마리아(북이스라엘)와 예루살렘(유다)의 신앙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어떠한지 돌아보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과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1~4)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세워나가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을 때 여로보암은 최남단의 ‘벧엘’과 최북단의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웁니다. 백성들에게 공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그녀의 장막’이라는 뜻을 가진 ‘오홀라’로 칭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나의 장막이 그녀 가운데 있다’라는 뜻을 가진 ‘오홀리바’로 호칭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과 함께합니다. 아예 우상을 대놓고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남과 북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켜 준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통해 어떤 경우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습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고, 채우기 위해 이방인들의 우상을 불러들입니다. 심지어 이방인들의 우상을 접목하여 혼합적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가리켜 “행음하고 있다”라고 말씀하면서 ‘오홀라’와 ‘오홀리바’로 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력하게 역사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순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5~8)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세상 방법에 의존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자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나면서 ‘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탄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십분 활용합니다. “하나님만이 신이 아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주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온갖 우상들이 만들어집니다. ‘사자’, ‘황소’, ‘독수리’, ‘개구리’, ‘뱀’ 등 두려움의 대상에서부터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바탕 가운데 가정 수호신과 지역 신 그리고 민족 신 등이 생겨납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고대 근동 전투는 다른 민족들과의 전쟁을 ‘신들의 전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곧 자신이 섬기는 민족 신의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대 최고의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던 앗수르의 힘에 매료됩니다. 그들은 앗수르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추태를 부립니다. 조공을 바칩니다. 그것도 모자라 앗수르가 섬기는 ‘신’을 따릅니다.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순간 내 생각과 내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처럼 어떻게 하면 앗수르에게 잘 보일 것인지 이것만을 궁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세상 방법에 의존하게 되면 사람의 육체적 본성뿐만 아니라 정신적 죄의 본성인 욕망이 그 사람을 다스리게 됩니다.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보고 죄악의 찌끼들을 회개를 통해 씻어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9~10)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은 불의하고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앗수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앗수르가 본색을 드러냅니다. 치욕과 강탈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짓밟아버립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달콤한 음행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고, 가혹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부정과 불의에 의존하는 자는 자신이 의존했던 그 부정과 불의로 인해 오히려 쫓김과 무너짐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속에서 불의와 부정을 구하는 자는 자신의 전부를 잃게 됩니다. 무엇을 행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창 1:28)의 축복이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 위에서 일어납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군대의 장관이 되어주셔서 어떤 악한 세력도 자신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지켜 보호해 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 있게 달려가는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화려한 장막을 꿈꾸며 야심 속에 살아갔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의 결말이 어떻게 종지부를 찍고 있습니까? 세상은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입니다. 주인의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세상을 야심으로 쫓아가다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 세력에 의해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오홀라’라 부르고, 유다를 ‘오홀리바’라 부른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향해 약속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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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켜 준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나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들을 회개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신앙을 한다고 하면서
때로는 세상적인 방법을 꾀하기도 하였고
나의 개인적인 판단과 결단과 야욕과 야망을 가지기도 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어리석은 행동이 있었으며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적인 행동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하여 신앙의 바른 자세를 가지도록
나를 말씀안에 나의 삶이 담기기를 원하며
나의 영육이 강건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쓰임받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오늘도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며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다스림 안에서 온전히 거하기를 소망합니다